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약속한 오슬로 협정(93년 체결)에 따라 최근 요르단 서안과 가자지구(地溝)의 유대인 정착촌을 강제 폐쇄하고 유대인을 철거시켰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에 저항하며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총질을 가했고, 팔레스타인인들 또한 폭력으로 이에 대항했다. 피가 피를 부르는 역사가 50년 넘게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출애굽’을 통해 팔레스타인 땅에 정착한 유대인들을 그곳에서 쫓아낸 것은 지금부터 2천년의 로마제국이었다. 그렇게 해서 일부는 유럽 땅으로 흘러들어 갔는데, 그로부터 1500년 이 흐른 뒤로 그들의 후예들이 스페인과 러시아, 프랑스, 독일 등 백인들로부터 차례로 괴롭힘을 당했다. 이를 참다 못한 유대인들은 19세기말부터 하나둘씩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유럽국가들도 앓는 이를 뺀다는 기분으로 이들의 이주를 도왔다. 결정적인 계기는 나치 독일이 만들어주었다. 그에 따라 이주자의 숫자가 늘어나자 유대인들은 ‘유대국가’ 창설이란 꿈을 꾸게 되었고, 2차 대전이 끝나기 무섭게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이 건국했음을 서둘러 선포했다. 서구제국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이를 환영했고 나아가 독립국가로 승인했다.

  하지만 그것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2천 년 간 조상 대대로 살아왔던 땅을 빼앗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웃 아랍 국가들도 자기 일처럼 이에 반발하며 ‘팔레스타인 단일국가’ 수립을 유엔에 요구했다.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는지 지금까지 실현되지 않았다. 단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만이 수립되었을 뿐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들의 영토는 요르단 강 서안과 가자지구로, 그 나머지 팔레스타인 땅은 이스라엘에게 양보했는데도 말이다.   

  유대인들을 2천 년간 괴롭혀 온 것은 유럽의 백인들이었다. 그렇다면 앙갚음은 그들에게 해야 하는 게 옳지 않겠는가. 그런데 오히려 그들을 등에 업고 죄 없고 힘없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앙갚음을 하다니... 참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불행하고도 안타깝게도 유대인과 같은 족속이 우리 이웃에도 있었다. 일본이 그 장본인이다. 일찍이 서구문명의 위력에 눈떴던 그들은 서구제국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런 과정에서 교섭도 가졌는데,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들은 서구인들이 자신들을 심하게 홀대한다고 느꼈다. 일본의 역사소설가 시바 료타로는 러일전쟁의 전 과정을 다룬 소설 ‘언덕 위의 구름’에서 이런 말을 했다.

  “유럽에서의 외교사를 살펴보더라도 한 강국이 다른 국가에 대해 이렇게까지 처참한 가학적 외교를 한 예는 없다. 백인국가 사이에서는 통용되지 않는 외교정략이, 상대가 이교도, 그것도 열등인종으로 간주되었던 황색민족 국가라면 태연히 취해버린다는 점에 일본의 괴로움이 있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했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만약 일본과 같은 조건인 나라가 유럽에 있었고, 원폭 투하가 미국의 전략에 필요했다 하더라도 유럽의 백인 도시에 그것을 떨어뜨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리라.”

  일본은 러시아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 받은 모멸감을 당장 조선에게 그대로 행했다. 조선은 백인종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황인종이기에 별다른 죄책감 없이 짓밟고 징용이란 이름으로 또 정신대란 이름으로 사지로 끌고 갔고 생체실험을 행했단 말인가. 앙갚음을 하고 싶었다면 피해를 주었거나 모멸한 자에게 해야지, 자신들보다 못한 자에게 되돌려준다면 비인간적이랄 수밖에. 그리고 비극 또한 계속될 수밖에 없다. 종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웃 피해 국가들과 정상적인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는 것만 보아도 이는 증명되고 있지 않은가.

강한 자에게는 더 없이 순하고, 약자에게는 더 없이 난폭하게 대하는 게 인간의 본성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지금이라도 깊이 반성하고 진심으로 사죄해야 할 텐 데 그렇지 못해 우리를 슬프게 한다. 역사는 자신을, 그리고 현재를 바로 보게 하는 거울이라 했으니 우리만이라도 우리보다 못한 이들에게 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번 기회에 한번 되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