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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8월 15일 (화) 22:01

우리 건축, 틈으로 본다. 책머리에서

왜 지금 ‘틈’을 말하는가

우리는 모두 건축가이다. 자기 손으로 기둥을 세우고 벽돌을 쌓아올려 집을 짓기에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자기의 집을 짓곤 하기에 그런 것이다.

건축가는 고독하다. 누군가가 도와주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니다. 집은 자기와 부단한 대화를 통해서만 지어 질 수 있기에 그러하다. 방은 몇 개나 들일까, 창은 어떤 모양으로 하지, 그럼 문은 어디다 두고, 지붕은 또 어떻게 하고….., 자신과 주고받는 대화는 이렇게 끝이 없다. 그렇지만 이 시간만큼은 누가 뭐래도 행복하다.

우리는 이처럼 모두 건축가이기에 건축에 대해 발언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이런 집을 원하니 이렇게 지어 달라.”고 말을 해야 건축이 ‘일어난다’. 그러니 건축에 대해 발언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아니, 건축에 대한 발언이 많으면 많을수록 건축은 발전한다.

나는 틈으로 세상을 본다. 또 다른 틈으론 소리를 듣는다. 그리고 나에게는 이것말고도 수많은 틈이 있다. 나는 그 틈으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말을 하고 숨을 쉬며, 먹고 난 뒤 생긴 찌꺼기를 몸 밖으로 배출한다. 나는 이런 틈이 없다면 한순간도 살아 있을 수가 없다. 틈은 그러니까 생명의 장치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틈이라 하면 고개를 가로 젓는다. 틈이 없다면 샘물이 솟아날 수 없고, 달걀의 껍데기를 깨면서 틈을 만들지 않고서는 병아리가 태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그 틈을 좋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왜 그럴까.

우리의 집에도 이런 틈이 있었다. 틈투성이란 말이 오히려 맞을 정도로 틈이 많았다. 집은 그 틈으로 숨을 쉬었다. 그 속에 사는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힘든 삶을 살았지만 마음만은 여유가 있었다. 숨쉬는 집에 살았고, 또 숨쉬는 집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사는 집에는 이런 틈이 없다. 우리가 틈을 좋지 않게 보았기에 틈을 몰라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집에서 틈을 몰아내고 나니 우리의 삷에서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알고 보니, 틈은 여유의 다른 얼굴이었던 것이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가 말했듯이, 집은 인간의 삶을 담는 그릇이다. 문제는 그 속에 담기는 삶이 어떤 것이냐일터, 그런데 분명한 것은, 틈이 있는 집을 짓는 사람과 틈이 없는 집을 짓는 사람의 삶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삶이란, 우선 그곳의 풍토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틈이 있는 집을 지었던 우리의 땅은 비가 많고 토질이 좋으며 사철의 변화가 뚜렷하다. 그래서 뭇 생명체가 자란다. 자연히 나무로 집을 짓게 되고, 그 것은 결과적으로 틈이 많은 집을 탄생시켰는데, 생명이 풍성한 이 땅에선 그 것이 이상적인 주거 공간이었다.

서양 문명의 발상지인 지금의 중동 땅과 지중해 일대는 나무가 귀하다. 건조하기 때문이다. 지중해 지역에선 돌이라도 흔하지만 중동 땅은 그 돌마저 귀하다. 그리하여 유럽에선 돌로 집을 지었고 중동에선 흙벽돌로 집을 지었다. 그 것들을 한장 한장 쌓아올려 짓다 보니 그들의 집에는 틈이 없다. 메마른 땅이라 집 바깥은 생명의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안과 밖을 철저히 구별해야 했는 데, 빈틈없고 두꺼운 벽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해주었다.

오늘 우리가 삶을 기대고 있는 현대식 주택이란 건조, 반건조 지대에서 태어난 것으로, 중동이나 유럽의 풍토에는 맞을지언정 우리의 풍초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 곳에선 되도록 바깥과 통하지 않아야 하지만, 우리는 바깥과 통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땅에 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심신이 고달픈 것은 단지 우리가 스피드에 쫓기고, 실적에 바둥대고, 남의 눈치를 보아서만은 아니다. 이런 삶의 방싱 또한 메마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것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우리의 심심이 틈이 없고, 그래서 숨쉬지 못하는 집에서 살기에 그런 것이다.

나는 지금 우리가 세계화다, 경쟁력이다, 구조 조정이다 하고 부르짓는 까닭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 것만이 최고다, 유일한 살 길이다 하고 쉽게 결론 내려서는 안된다는 것을 나는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된다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갖게 되리라 믿는다.